본문 : 시편 131:1-3
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2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3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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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평안하십니까? 불안하십니까? 감사와 기쁨이 넘치십니까? 불만과 답답함, 짜증과 염려가 가득합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이 땅의 삶이 비록 메마른 광야와 같이 거칠고 어려움이 있는 곳이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평안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 131편에서 다윗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고요하고 평온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다윗이 지금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이 되었기에, 주변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힘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이 쓴 시편들, 그리고 지금 읽은 시편 131편도 사울 왕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음을 피해 춥고 메마른 광야에 들어가 숨어 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불안하고, 억울하고, 좌절되고, 분노해야 할 상황입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 두려움으로 가득해야 정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평안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갓난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서 우유를 충분히 먹은 후에 그 품에 잠들어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이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어머니 품에 있고 그 어머니의 가슴에 모유를 공급받으면 아무런 걱정없이 새근새근 평안하게 잠을 잡니다.
다윗은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좋은 환경, 아무런 문제와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나를 가시처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 괴롭히는 사람, 가장 고통스러운 광야에서 도망치며 숨어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품에 거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속에 있으면 걱정 할 것없이 평안하게 잠 들 수 있는 아이와 같은 평안을 누리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상황과 형편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상황과 내 마음의 동기, 형편을 아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믿고 내 마음에 생기는 근심과 걱정, 분노와 원망의 마음, 미래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얼마나 많습니까? 특별히 빌립소서 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의 모든 상황과 형편, 특별히 내 마음에 평강을 빼앗는 근심과 걱정, 사단이 주는 생각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교만과 오만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분노와 미움이 가득한 이유를 자세히 보면 교만과 오만함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오만함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만함과 오만함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의롭다, 낫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성경에 그런 교만과 오만함의 대표적 인물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말씀과 기도 생활을 잘 한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십일조 생활과 율법을 지키며 일주일에 두 번이나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평안이 있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평안을 누리며 살지 못했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의 모습은 있었지만 진정 하나님 품 안에 거하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교만한 마음, 오만한 길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만했기에 사람들을 경시하고 높은 자리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으로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교만했기에 목수요 천민이며 시골 출신인 예수님을 경멸했습니다. 그들이 교만했기에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과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교만했기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교만했기에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결국 죽이는 계략을 꾸몄고 십자가에 죽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옳게 여기고 승리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평안이 아닌 멸망을 받았습니다.
진정 하나님 안에, 주님 안에, 말씀과 성령 안에 거하여 그 말씀과 뜻대로 행하는 자가 다윗과 같이 젖뗀 아이처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평안을 진정 누리고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