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느헤미야 13:23-28
23. 그 때에 내가 또 보니 유다 남자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을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이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였다.
25. 나는 그 아버지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서 맹세하게 하였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딸들을 이방 사람의 아들에게 주지 마시오.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들도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는 안 되오.
26.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죄를 지은 것도, 바로 이방 여자와 결혼한 일이 아니오? 어느 민족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소.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하나님은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소. 그러나 그마저 죄를 짓게 된 것은 이방 아내들 때문이오.
27. 이제 당신들이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데려와서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소?”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기에 나는 그자를, 내 앞에서 얼씬도 못하도록 쫓아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재건 후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며 살겠다고 맹세하고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돌아가서 다시 돌아와서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순종하겠다고 언약했던 모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원수 도비야가 성전 방 안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중단하여 레위인들이 성전을 떠나갔고 성전은 내 버려져 있었습니다.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이방인들과 결혼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니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자녀들이 낳은 자녀들을 보니 유대인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이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느헤미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25절입니다. “나는 그 아버지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서 맹세하게 하였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딸들을 이방 사람의 아들에게 주지 마시오.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들도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는 안 되오”
느헤미야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분노했는지 나무라고, 저주 받을 것이라고 야단을 치고 더 나아가 몇몇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 머리털까지 뽑았습니다. 왜 그렇게 느헤미야가 분노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구약 곳곳에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책망합니까? 그리고 특별히 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 결혼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유대 말을 하지 못하고 이방말만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분노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듯이 언어는 곧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통해서 민족의 문화가 전달이 되고 언어는 곧 민족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어는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을 때 한국말을 쓰지 못하고 일본말을 쓰게 하려고 얼마나 애썼습니까? 그 이유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완전하게 지배하고 망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택한 받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구원 받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세상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을 통하여 자신들만 아니라 자녀들이 세상과 이방 문화 하나님이 아닌 우상의 죄된 모습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솔로몬 왕이 무너진 것이, 이스라엘 나라가 무너진 것이 바로 이방 여인을 들여 와서 일어난 일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상고 시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된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기 때문에 끊임없이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세상의 언어와 세상의 문화, 세상이 추구하는 사단과 죄의 유혹이 끊임없이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을 모르듯이 우리들의 마음과 삶에 점차적으로 세상의 언어와 가치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들어오기 쉽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세상과 동화되고 타협하고 살아갑니다. 어느새 정체성을 잃고 섞여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뜻이 아닌 세상의 법과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이방 여인을 데리고 살고 있었던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과 마찬가지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보면 “깨어라, 정신을 차리라, 분별하라” 라는 말씀을 계속 우리들에게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던 이방 사람 산발랏의 딸을 데리고 결혼하여 사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27절에 “이제 당신들이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데려와서,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소?”라고 책망하며 그들을 쫓아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법과 뜻이 아닌 세상적인 육신의 정욕대로, 세상의 방법을 따르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뜻에서 벗어나는 세상과 죄를 품고 살고 있는 것을 단호히 쫓아내기 원합니다.